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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7)] 동요, 가곡, 성가에서 아리아로의 여정

네살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바이올린도 짧은 기간 배웠었지만, 한번도 음악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10살 때 내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치과의사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당연히 의대를 지망해야 했다. 열 다섯살하고도 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여름 수련회에 참가했는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그래프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각자 풀밭에 흩어져서 그림을 그리던 순간이었다. 그때 막연히 ‘음악가’라는 커다란 글자가 내게 다가왔다. 마치 거절할 수 없는 명령을 받은 사람처럼 다음날 아침 노래를 가르칠 선생님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내가 성악가를 꿈 꾼 첫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2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오페라 가수가 되어 있다. 음악가라는 큰 분야에서 성악가로 좁혀졌고, 미국으로 유학을 온 이후 오페라라는 장르로 더욱 구체화됐다. 성악가로서 연주할 수 있는 분야는 크게 오페라와 콘서트 가수다. 최근에 들어 뮤지컬 가수가 되기 위한 성악도도 많아졌다. 오페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는 오페라에게 선택돼졌어요.”라고 답하곤 했다. 내가 무엇을 알고 그 길을 찾아간 것이라기 보다는,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한 훈련 과정에서 오페라 레퍼토리를 공부해야 했었고, 프로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던 것이다. 어렸을적엔 동요를 불렀고, 학창시절에는 가곡을 배웠고, 교회에서는 성가를 배웠었지만,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면서 처음으로 오페라 아리아들을 배웠다. 하지만 미국으로 유학 온 이후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 오페라가 노래 이상의 거대한 장르라는 것이다. 언어, 동작, 연기 등이 필요한 예술이다. 이탈리아 언어로 된 오페라가 가장 보편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유럽의 언어들을 완벽에 가깝게 발음해야 하며, 무대 위에서는 마치 무용수처럼 가벼운 걸음질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연극 배우들처럼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연기력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인 것을 처음부터 알았었다면, 굳이 이 길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덤볐던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도전을 즐기는 쾌감을 준 것 같기도 하다. 줄리아드 대학원 시절 생전 처음으로 오페라 주인공에 뽑혔다. 푸치니의 ‘수녀 안젤리카’ 에서 안젤리카를 부르게 된 것이 나의 첫 오페라 역사이다. 무대에서 간신히 노래를 부르는 실력만을 겨우 가졌던 나에게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며 극중의 인물이 된다는 것이 상당한 도전이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학교 내에서의 오페라였고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아닌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되었었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첫 무대의 경험이었고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오페라를 즐기게 되었고 무대에 서는 시간을 무작정 기다리며 사모하는 이가 되었다. 어릴 적에는 TV에서 가수를 보면서, 내가 마치 노래하는 상상을 하며 나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일기나 수필을 쓰면서 내 속에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적어 내는 일을 즐겼다. 무뚝뚝하고 수줍음 많았던 경상도 아이에게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통로였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지금 이 자리까지 와서 무대 위에서 울고 웃으며 연극을 노래하고 있는지. 무대에서 관중과 소통하는 일이 마치 악몽처럼 무서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어떻게 지금 무대를 기다리고 즐기며 그리워할 수 있는지. 조명이 꺼진 무대를 내려오면서 한없이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방금 내려온 그 무대를 벌써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버지니아에 와 있다. 2주 후에 올려질 나의 101번째 ‘나비부인’ 공연을 기다리며 어릴 적 내가 동경했던 TV 상자 속의 그 가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무대에 선 내 모습을 처음으로 꿈꾸게 해줬던 그 때를. www.yunahlee.com.

2011-03-11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6)] 일인치의 마술

천사의 도시-로스 엔젤레스에 다녀왔다. 크리스마스 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뉴욕에서 떠나기 전 날 약간의 감기 증세가 보였지만, 별 걱정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이튿날 첫 연습에 들어갔을 때는 목소리를 보호하려고 전혀 노래를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연습 날은 좀 더 나아지려나 했더니, 기침이 더욱 심해지면서 가래가 낀 소리가 더 많이 났다. 그렇지만, 마지막 연습까지 노래를 안 부르면, 지휘자도 오케스트라도 합창단도 음악회 준비할 수가 없기에 마지 못해 노래를 했다. 다행히 목소리가 잘 나오는 듯 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예전에도 경험한 일이지만, 목 상태가 안 좋을 때 무리하게 연습을 하고 나면 그 다음날 성대가 완전히 부어버려서 목소리가 아예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말소리도 낼 수가 없을 만큼 목소리가 완전히 잠겨 버렸다. 음악회가 시작될 때까지는 30시간 정도 남아있었고, 당황한 지휘자와 나는 병원을 찾아가 방법을 모색했다. 운동선수들이 근육 통증을 순간적으로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요법을 쓰는 것 밖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근육 주사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고 부은 성대가 순식간에 가라앉기를 기다려봤다. 다행히 다음날 어느 정도 목소리가 나왔지만, 부족하다고 판단해 주사처방을 더 받았다. 조심스럽게 노래를 불러서 음악회는 무사하게 치루어냈다. 성악가에게 성대 문제만큼 어렵고 무서운 일이 없다. 주로 감기로 시작되어서 무리한 연습을 하게 되는 경우 성대가 고장이 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들 중에도 성대결절에 걸려 커리어를 그만 둔 경우는 간혹 있어 왔다. 2007년 사망한 거장 테너 파바로티도 무명 시절 성대결절로 인해 성악을 한동안 포기했었다고 한다. 또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카루소는 1920년 미국 순회 공연 중 기관지염으로 시작된 병으로 인해 오페라 공연 중 무대 위에서 목으로 피를 토했고, 그 후 일년이 못 되어서 결국 사망했다. 세계 오페라계의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레브코와 멕시코 출신 테너 롤란도 비야손 커플이 갑자기 광고 막에서 사라진 이유도 작년에 일어난 롤란도 비야손의 성대 종양 제거 수술 때문이다. 노래 부르는 게 인생의 전부인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사라진다는 일은 죽음에 가까운 절망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역시 목소리를 잃어버린 후에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짧은 54년의 인생을 마감하게 되지 않았던가? 몸이 악기인 성악가들에게는 체력 못지 않은 정신적 힘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있다면 정신이 아닐까? 술, 담배, 유흥을 떠난 금욕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성악가들의 악기 관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정신적인 행복감과 충만감이 없다면, 일 인치도 채 안돼는 작은 두 장의 근육인 성대가 어떻게 이 커다란 무대 위의 스트레스를 지탱해줄 수 있을까? 정작 노래 소리는 작은 성대를 통해 흘러나올지 모르지만, 그 소리를 지탱하는 음악성과 감동은 성악가의 온 몸과 정신을 타고 흘러나와 세상의 행복과 불행을 표현해 준다. 성악가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은 그들의 존재와 비존재를 결정하는 너무도 절대적인 요구 사항인 것이다. 내일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 상주하고 있는 성대 전문 의사와의 약속을 잡았다. 물론 별일이 없는 것은 느끼지만, 만약의 경우를 위해 확인하러 간다. 나의 일 인치 미만의 성대 근육 두 장이 어떻게 잘 버텨주고 있는지 말이다.

2011-01-21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5)] 기다림의 예술-메시아

680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5>기다림의 예술-메시아 메시아는 ‘기다림의 예술’ 메시아 공연 차 버지니아에 다녀왔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메시아가 많이 연주된다. 조지 헨델이 쓴 오라토리오인 메시아는 3세기째 걸쳐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18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독일인으로 후반에는 영국으로 귀화했던 헨델은 경제난에 눌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중, 성경을 가사로 한 오라토리오를 24일만에 작곡하게 된다. 워낙 짧은 시간에 작곡이 되었고, 또 특정한 연주자를 위해 작곡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수정과 변화를 겪다가 마침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초연을 갖게 된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나비부인’ 공연차 더블린에 머물렀을 때, 헨델의 메시아가 초연되었던 곳을 우연히 지나간 기억이 있다. 처음 작곡할 때는 적은 숫자의 악기와 합창단이 참가했지만, 헨델이 죽고 난후 모차르트에 의해 더 많은 악기가 동원되는 악보가 마침내 완성되었고, 그 악보가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버전의 기초가 되었다. 오라토리오가 오페라와 가장 다른 점은 연극의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합창단이 뒤에 서있고 오케스트라가 무대에서 연주하고 솔로 가수들은 지휘자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솔로 파트가 있을 때마다 일어난다. 메시아의 솔로 파트는 그다지 성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어려운 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자기 순서가 올 때까지 무대 위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페라에서는 자기 순서가 아닌 부분에서는 대부분 무대 밖에서 기다리게 된다. 나가서 물도 마시고 스트레칭도 하고 목도 가끔씩 풀어가면서 자기 순서를 준비하는 것과는 달리, 오라토리오는 음악이 시작함과 동시에 무대에 모두 다 같이 나가서 가만히 앉아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주로 겨울에 연주가 되니, 히터 바람 때문에 목도 마르고 허리도 뻣뻣해지고, 얼굴도 간지럽기도 하고, 혹은 목소리를 풀어 놓은 지 한참이 지났기에 아직도 괜찮은지 확인도 하고 싶은 등등 여러 가지 요구들이 생기기도 한다. 참 곤란한 일이긴 하다. 워낙에 긴 음악이라 늘 조금씩 줄여진 버전으로 공연을 하게 되지만, 가끔씩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생략 없이 약 3시간의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이번 주말 링컨센터 에버리피셔홀에서도 브니엘 합창단과 생략이 없는 전곡을 연주한다. 1부 탄생, 2부 수난, 3부 부활의 내용을 가진 메시아는 전통적으로 1부과 2부 사이에 휴식시간을 주로 가진다. 그럴 경우에 소프라노 솔로는 무대에 나간 후 약 30분간 가만히 앉아 있다가 드디어 첫 아리아를 부르게 된다. 그때까지 목이 잠기지 않기 위해서 합창단을 따라 조용히 허밍을 해 보기도 한다. 테너는 음악 시작과 거의 동시에 첫 아리아를 부르고 난 후 2부 중간까지 거의 한시간 가량을 기다리게 된다. 그 침묵의 기다림이 바로 메시아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자, 솔로 가수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메시아 공연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이지만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될 때는 관객과 연주자 모두다 일어서게 된다. 영국 초연 시 국왕 조지 2세가 신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해 자리에서 일어나 할렐루야를 감상한 이후로 전통이 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헨델 자신도 할렐루야를 작곡할 당시, 스스로 신의 얼굴을 뵈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성탄절이다. 세상에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메시아가 왔었고, 우리들은 그를 경배하고 축하하기 위해 온갖 모습의 예술 행위를 한다. 오라토리오는 주인공이 없는 서사시이다. 독창자들도 오케스트라도 합창단도 지휘자도 다만 음악을 함께 만드는 동지로서 무대에 같이 설 뿐이다. 추운 겨울, 외롭고 가난한 이들이 더욱 힘든 이 때에, 사랑과 나눔의 메시지를 담고 쓰여진 이 음악, 메시아가 연주되는 동안 만큼은 우리의 이웃들이 조금 더 훈훈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의 약자들, 그들이야말로 헨델이 만난 신께서 품어주고 싶었던 이들이 아니었을까.

2010-12-15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4)] 그날 이후, 공항의 해프닝

소프라노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4> 그날 이후, 공항의 해프닝 그날 이후, 공항의 해프닝 여행을 자주 하다보니 공항에서 일어나는 해프닝들이 많다. 2001년 9월 11일 이후로 공항 안전검색이 강화된 이후로는 공항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미국을 거치지 않고 다니는 여행과, 미국에서 출도착을 하는 여행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여름 유럽에 갔을 때의 일이다. 타국에서 한달 이상 체류할 때는 늘 한국식 양념을 가지고 다닌다. 그때도 밀폐된 작은 용량의 고추장과 된장을 가지고 여행했었다. 예전과는 달리 액체나 크림 종류는 3온스 이상의 든 용기를 가지고 갈수는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체크인하는 가방에 넣어 갔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비행기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가방에는 넣고 갈 수 없는 법이 새로 생긴 것이다, 이 법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었던 때라 그만 깜박 잊고 고추장과 된장을 컴퓨터 가방에 넣고 비행기 안으로 가지고 들어 가려고 했다. 뉴욕에서 쥬리히로 가서 다시 독일 하노버로 가는 길이었다. 다행히 뉴욕에서 쥬리히로 가는 국제선 8시간 비행 전에는 검색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쥬리히에서 경유해 다시 1시간 반 독일로 가는 작은 비행기로 갈아 타는 곳에서 검색을 다시 했는데, 그만 검색원들에게 걸리고 말았다. 뭔지 알 수 없는 그들은 냄새도 맡아보고 흔들어도 보고 눌러도 보다가, 결국은 음식 양념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앞으로 독일에서 한달 반 동안 먹고 살아야 하는 나에겐 꽤나 중요한 것이었기에, 나름대로 설명하고 사정을 해봤다. 뉴욕에서 쥬리히까지 오는 동안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을 보면, 내가 테러범이 아니며 또 폭탄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게 드러나지 않았냐고 항의해봤다. 하지만, 법은 법이고 규칙은 규칙이라는 이들 앞에서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했었다. 고추장 없이 독일 시골에서 한달 반 지낼 생각에 얼마나 화가 났었던지. 스위스의 쥬리히 공항에서는 참 일이 많았었다. 기념품으로 샀던 조그만 스위스 아미 칼이 달린 열쇠고리를 몇 개 소지하고 있었다가 모조리 빼았겼던 일도 있었다. 그 때도 항의를 했다가 오히려 테러범으로 오해를 받을 뻔까지 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콘서트를 하고 난 다음날이다. 아침 이른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미처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해서, 호텔에 있는 사과 하나를 핸드백에 던져 넣고 비행기를 탔었다. 뉴욕에 도착하기 전, 입국 신고서에 음식물을 반입하는냐고 묻는 란에 아무 생각없이 "노우"라고 표기했다. 입국 심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왠 강아지가 내 가방을 바라보고 마구 짖어대는 것이다. 알고 봤더니, 마약 등을 검색하기 위해 훈련된 경찰견들이 가방을 검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군것질 찌꺼기들을 가방에 남기고 있었던 여행객들이 각자 자신의 가방을 열어 보이면서 궁색한 변명들을 해대야 했었다. 또 다시 법은 법이고 규칙은 규칙이라고, 과일을 가지고 외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 명백한 사실이므로 서류상으로 범죄자 아닌 범죄자가 되어버렸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있게되면 범죄 사실과 더불어 벌금까지 내야 한다고 경고를 받았었다. 정말 사과 하나 때문에 미국에서 이런 망신을 당할 줄을 꿈엔들 알았을까. 하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나? 그들의 일이야말로 조금의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닌가? 다만 우리가 원망할 사람들이 있다면, 9년 전 이 미국땅에 너무나도 엄청난 참사 때문인 것을. 이렇게 저렇게 나에겐 다양한 얘깃거리도 많이 만들어 준 공항 검색장. 다음 여행지에서는 또 어떤 황당한 일들이 생겨 나를 애닯게 할건지 사뭇 궁금하기도 또 걱정스럽기도 하다. www.yunahlee.com.

2010-11-29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3)] 스위스의 고요한 아침

680 소프라노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3>스위스의 고요한 아침 스위스의 고요한 아침 스위스에 온지 이틀째다. 수도인 베른에서 약 70마일 동북쪽에 있는 ‘상트 갈렌’이라는 곳이다. 국제 금융도시인 취리히에서 기차로 약 50분가량 걸리는 작고 아담한 도시이다. 내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데뷰한 곳이 베른이었기에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오늘은 연습 두번 째 날인데 역시나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전날 밤 잠을 설쳤다. 이곳은 벌써 아침 8시인데 내 몸은 아직도 뉴욕 시간인 새벽 2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오페라 가수들과 얘기해 보면 각자 시차적응에 관한 나름대로의 처방이 있다. 어떤 이는 비행기간 동안 완전히 금식을 하고, 또 어떤 이는 머리닿는 순간만 있으면 깜빡 잠을 자기도 한단다. 금식도 낮잠도 전혀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거나 급기야는 타이레놀 PM 에 의존하곤 한다. 이번 공연은 리바이벌 작품이라 리허설 기간이 너무나 짧다. 사흘간 연습 후 다음 주 월요일에 첫 공연을 올린다. 이곳에 오기 전 극장에서 미리 보내준 DVD를 보고 무대 동선은 대충 파악했지만, 생전 처음으로 만나는 지휘자와 다른 가수들과의 호흡을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런 것들을 볼 때면 미국과 유럽 오페라 극장의 시스템 차이를 느끼곤 한다. 미국에서는 오페라가 늘 접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닌 반면에,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은 아주 작은 도시 하나에도 오페라 극장이 하나 이상씩 주어져 있다. 그래서 수많은 극장들이 오래된 경험을 가진 가수들과 크고 작은 공연들을 일년 내내 수도 없이 올린다. 그래서 연습 기간이 짧은 공연들도 허다하게 생기는 것이다. 하루 저녁 유럽의 모든 도시에서 공연되는 오페라가 과연 몇 작품일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몇 배로 더 큰 대륙인 미국에서 공연되는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것이 참 많지만 오늘 아침에는 유럽인들의 남다른 예절을 봤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고요했다. 작은 호텔 식당이었지만 사람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 참으로 소음이 적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모두들 서로에게 방해를 하지 않으려고 애써 소음을 줄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바삭한 토스트를 베어먹으면서도 천천히 소리가 덜 나게 베어먹고,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도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대화도 천천히 조용히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바로 전 펜실베이니아주의 허쉬파크로 휴가를 갔었는데 그때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했던 기억을 하면 정말 흑과 백의 차이다. 물론 허쉬파크는 아이들이 많이 놀러오는 놀이공원 근처라 젊은 부부들 또 어린 아이들이 많이 몰려 있었긴 했지만, TV를 크게 틀어놓고 뉴스를 보면서 기름진 도너츠와 와플 또 크림치즈를 갖다 먹으면서 마구마구 떠들었던 것에 비하면 이곳은 너무나 고요하기만 하다. 몇 백년 전 유럽에서 건너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낸 이들인데 지난 수 백년간 너무나 많이 변화한것 같다. 미국의 대표적인 권리인 자유로움이 그런 것에도 표현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나 역시 그때 아침식사에서 불쾌함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나 고열량의 아침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남편과 잠시 염려섞인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이번 주말에 앞으로 한달 간 묵을 새 아파트로 이사할텐데, 제대로 된 부엌이 있다고 해서 아주 다행이다. 취리히 한국마켓에 가서 이것 저것 사다가 내 몸에 좋은 일 좀 해야 할 것 같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나온 먹거리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풍족한지! 스위스 사람들의 각별한 친절함도 아마도 이런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www.yunahlee.com.

2010-11-29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2)] 푸치니의 '춘향전' 상상하며

이모연 여사. 내 외할머니의 본명이다. 1927년에 출생하신 할머니는 일제 식민지 치하 한국에서 태어나 1943년 오사카로 유학갔다. 그 곳에서 일본식 이름인 하루꼬(春子)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위해 열여섯살에 시집을 간 외할머니. 콜로라도 공연기간 중 일주일간 휴식이 생긴 나는 외할머니가 계신 LA에 잠시 다녀왔다. 이전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10대 이야기를 들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페라 가수로서 내가 가장 많이 공연한 작품이 푸치니의 ‘나비 부인’이다. 일본 나가사키 출신 게이샤의 인생을 담은 이 오페라를 지금까지 100여회에 가까이 공연하면서 참으로 많은 국적의 가수들을 만나 함께 공부해왔다. 최근에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서양인들에게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는 참으로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서양에 문호를 먼저 개방했었기에 일찌기 유럽인들에게는 생소하고 특별한 것으로 한때 각광을 받았었던 것이다. 아직도 서양에서의 일본 문화는 왠지 우등한것으로 또 어떤 면에서는 동경받는 대상이 되어있는것 같다. 스시, 녹차, 매화, 소니 등등 많은 일본문화가 세계화되어있다. 오페라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서는 모든 가수들과 연출자, 지휘자 모든 스탭들이 시대적 배경, 줄거리, 음악과 가사의 상세한 부분을 공부하고 연구하게 된다. 특히 일본의 한 특정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났었던 선명하고 비극적인 줄거리를 담은 ‘나비 부인’은 당연히 동양계 가수들이 대거 캐스팅되곤 한다. 많지는 않지만 일본계 소프라노 중에 나비부인을 소화할만한 목소리나 성량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1순위로 캐스팅 대상이 된다. 한국인인 내가 나비부인을 주로 공연하게 되는 이유도 그러하다. 지금 함께 공연하고 있는 메조 소프라노 미까는 일본 오사카 출신이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에 반쯤 적을 두고 있으며 일본적 삶의 모습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 이번에 두번째로 공연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지난 번보다 더 많이 친해졌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언젠가 한일간의 사뭇 예민한 문제에 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결국 서로 둥글둥글하게 얘기를 마무리하며 끝내게 되었다. 정신대에 관해 슬쩍 물어봤던 나는 미까의 예상치 않은 답변에 서로 어색하고 싶지 않아 멋적게 말꼬리를 내리게 되었었다. 같이 공연하는 다른 서양 가수들에게도 미까는 상당히 흥미로운 친구가 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공연하고 있는 오페라가 일본 배경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미까에게 정통적인 일본스러움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한다. 걸음걸이 하나부터 음식이며 소품이며 기모노 정장 모습까지 제대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지금까지 나비부인을 공연하면서 내가 동양인이기에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연기나 표현이 참 많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일본인인 미까와 함께 공연을 하면서는 어느새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20세기 초, 1904년에 ‘나비 부인’을 초연시킨 이태리 오페라의 거장 푸치니가 한국 배경의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고 작고한 것이 안타깝고 원망스러워진다. 가뜩이나 ‘나비 부인’이 초연되었던 그 해 2월은 한일합방의 시초인 한일의정서가 작성된 때이기도 해서 더욱 괜한 울분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문호를 일찍 개방했었더라면 한국의 ‘장화홍련’이나 ‘춘향전’이 이탈리아 작곡가에 의해 씌여져서 지금은 전 세계에서 공연이 되고 있었지 않을까. 어제 저녁에는 조연출자가 초대한 저녁식사에 후식으로 내가 찹쌀떡을 만들어 갔다. 처음으로 만들어봤는데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뭐냐고 묻길에 ‘sweet rice cake’이라고 했더니 생소해했는데, 미까가 ‘모찌’라고 하자 다들 ‘아하!’ 했다. 언제부터 모찌가 그렇게 많이 알려졌었는지. 일본 음식은 다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그저 반갑고 고마와했다. 다음 번에는 제대로 된 한국 후식을 선보여 봐야겠다. 수정과나 식혜라면 아마도 큰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다. www.yunahlee.com.

2010-08-13

[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1)] 콜로라도의 밤…행복을 담는 두세가지 방법

콜로라도에 온지 한달 반이 됐다. 자연과 이렇게 가깝게 살아본 것이 언제인가 싶은데 어느새 많이 적응이 되었다. 소음도 공해도 없고, 불필요한 조명이 없는 콜로라도는 언제나 내가 선호하는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어젯 밤 바라본 하늘에는 내 평생 본 별들 숫자보다 더 많은 별들이 주루룩 흩어져 있었다. 오늘 저녁 아홉번째 ‘나비부인’ 공연이 있다. 약 한달간 연습을 하고 개막한 것이 6월 26일이었으니, 앞으로 5번 더 남은 공연까지 10주의 공연이 끝나게 된다.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오페라를 통해 사람들과 교감을 하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 어떤 직업에 어려운 부분이 없겠는가만은 오페라 가수라는 직업을 택한 것은 행운인 것 같다. 가끔씩 느끼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이외에는 그다지 어려움을 호소할만한 부분은 없으니 말이다. 집을 떠난 먼 곳에서 공연과 공연 사이 짬이 날 때 가장 즐기는 것은 인터넷 안에서 세상을 보는 일이다. 특히 한국에 관한 뉴스나 이슈들을 자세히 읽고파고 드는 것에는 이제 중독증세까지 생겼다. 잠자리 머리까지 컴퓨터를 들고 가서 오늘 일어난 세상만사를 듣고 읽다가 잠이 드는 날이 허다하다. 한국에서는 연예인들에 관한 가십과 사건들이 매일매일 차고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듯하다. 연예인들의 소식, 속 이야기, 사건들을 보면 예술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나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가끔 느낀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그들과는 달리, 소수의 매니아들만이 찾아와주는 곳이 오페라 극장이다. 그러나 무대를 경험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다는 생각이다. 가끔 진지한 대중가수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그들의 자유로운 창작세계가 부러워질 때가 있다. 오페라 가수는 위대한 작곡가와 작가가 창조한 드라마와 음악을 노래로 재표현해내는 과정을 맡은 만큼, 무에서 유로의 창작활동은 전혀 아닌 것이다. 재창조된 음계와 음성에 대한 연구와 노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수준의 노래가 완성되기에, 우리는 무한한 노력과 연습으로 칭찬과 박수를 받는다. 그것을 위해서 악기를 완성하고 관리하고 또 심성을 다듬고 행복을 맘에 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행복을 맘에 담기 위한 노력 중의 또 하나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먹이는 일이다. 어제 저녁에 같이 공연하는 오페라 가수들과 지휘자 또 연출자를 내 아파트에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해 먹였다. 함께 공연하는 일본인 친구 가수가 도와줘서 정말 많은 음식을 조리했다. 두 종류의 만두, 매운 오징어 볶음, 생강으로 만든 쇠고기 요리, 잡채, 중국식 빨간 탕수육 그리고 후식으로는 단팥을 속에 넣은 만주도 만들어 봤다. 오페라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콜로라도로 온 우리는 얼마나 많이 웃고 떠들었는지 모른다. 국적과 배경, 현재 환경까지 다르지만 모든 것을 초월한 우리들의 파티에는 정말 즐거움과 행복함이 있었다. 영국 출신 지휘자는 아직 어려서 가끔 짖궂은 농담으로 내 인상을 찌푸리게하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공통점으로 잡채 한 접시를 놓고도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오늘 저녁 공연엔 뉴욕에 있는 매니저가 와서 보기로 했으니 좀더 신경쓰고 잘 해야겠는데, 어제 무리한 잔치로 아직도 몸이 나른하다. 평소에 절대 즐기지 않는 낮잠을 청해볼까. 잠이 들지 않으면 베란다로 나가서 8527피트 고산지의 황홀한 공기나 깊이 들이 마시며 휴식하지 않을까 싶다. (2010년 7월 17일 콜로라도 센터시티 오페라에서)

2010-07-23

'불가사의한 연기였다'…‘나비 부인’ 역 이윤아씨에

"경이로웠다” “불가사의했다” 뉴저지에 사는 소프라노 이윤아(38)씨가 뉴욕주 레이크조지오페라의 ‘나비 부인’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해 지역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씨는 지난 2일 저녁 사라토가스프링스의 스파리틀시어터에 올려진 푸치니 오페라에서 미국 해군장교 핑커톤과 사랑에 빠졌다가 버림받고 자결하는 비운의 일본 여인 초초상 역을 맡았다. 뉴욕주 쉬넥타디의 데일지가젯은 “이윤아씨는 경이로웠다. 3막 모두에서 세련되고 순수한 여인에서 열정적으로 절망스러운 여인을 오가는 연기력을 능숙하게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사라토가스프링스의 일간지 사라토지안은 “이씨는 사랑과 슬픔의 감정을 길러내기위해 모든 세포를 가동했다. 그의 ‘어떤 개인 날(Un bel di)’은 끝없는 찬사를 받아냈다”고 호평했다. 한편, 올바니의 일간지 타임유니온은 “불가사의했다. 그의 목소리는 눈부시게 치솟았으며, 연기는 아름답고도 감동적이었다. ”고 찬사를 보냈다. 이윤아씨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프닝에 찬사가 쏟아져 뿌듯하면서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데이빗 T. 휴셀이 지휘하고, 헬레나 빈더가 연출한 ‘나비부인’에는 초초상의 엄마 역에 소프라노 장유나씨, 친척 역에 메조소프라노 에스더 강씨 등 한인 성악가들도 출연 중이다. '나비부인’은 8일 오후 2시, 10일 오후 7시30분, 12일 오후 2시에도 공연된다. 티켓 $25∼$80. www.lakegeorgeopera.org. 518-584-6018.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200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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